스마트폰이든 노트북이든, 안에는 손톱만 한 반도체가 들어 있어요. 우리는 은연중에 그 칩을 파는 회사가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다고 생각해요. 그런데 반도체 산업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장면이 나와요.
칩을 '설계'만 하는 회사가 있고, 그 설계도를 받아 '제조'만 해 주는 회사가 따로 있어요. 우리가 아는 유명한 칩 회사 중 상당수는, 사실 공장이 하나도 없어요. 그림만 그리고 굽는 건 남에게 맡기죠. 오늘은 이 낯설지만 반도체 뉴스의 뼈대가 되는 분업 구조를 풀어 볼게요. 이걸 알면 "○○가 △△에 칩 생산을 맡겼다" 같은 문장이 갑자기 또렷하게 읽혀요.
먼저 '그리는 쪽'이에요. 칩을 어떻게 만들지 설계만 하고, 공장은 갖지 않는 회사를 팹리스라고 불러요. '팹(fab)', 즉 공장이 '없다(less)'는 뜻을 붙인 말이에요.
이 회사들이 파는 건 사실 물건이라기보다 아이디어와 설계도에 가까워요. 어떤 기능을 넣을지, 회로를 어떻게 배치할지, 성능과 전력을 어떻게 잡을지를 고민해요. 요리로 치면, 최고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셰프인데 정작 자기 주방은 없는 셈이죠.
공장을 안 지으니 막대한 설비 투자에서 자유롭고, 대신 머리 쓰는 일, 즉 설계 실력과 아이디어에 회사의 운명을 걸어요. 좋은 설계를 내놓으면 공장 없이도 큰 회사가 될 수 있어요. 우리가 이름을 아는 여러 유명 칩 회사가 바로 이 팹리스예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