우리가 아는 셈법은 단순해요. 쓴 만큼 낸다. 전기도, 물도, 데이터도 쓴 만큼 청구서가 날아오죠. 안 쓰면 안 내고요. 너무 당연해서 다른 방식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워요.
그런데 큰 에너지 세계에는 정반대 셈법이 있어요. "네가 실제로 가져가든 안 가져가든, 정해진 양만큼의 값은 무조건 내라"는 계약이에요. 손님이 그달에 한 방울도 안 써도 약속한 돈은 나가요. 이걸 take-or-pay(안 써도 지불)라고 불러요. '가져가든지(take), 아니면 값은 내든지(pay)'라는 뜻이에요. 왜 이런 계약이 생겼을까요.
이 이상한 계약은 '아주 크고 오래 걸리는 시설'에서 태어나요.
가스를 먼 곳까지 나르는 관을 깐다고 해 봐요. 관 하나 놓는 데 어마어마한 돈과 몇 년이 들어요. 이걸 놓는 회사 입장에선 겁이 나요. 큰돈을 들여 관을 깔았는데, 몇 년 뒤 손님이 "올해는 별로 안 쓸래요" 하면 그 큰 투자가 허공에 뜨니까요.
그래서 지을 때 미리 약속을 받아요. "앞으로 몇 년간, 실제로 얼마를 쓰든 이만큼의 값은 내 주세요." 손님도 그 대신 값을 좀 깎거나,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이득을 얻어요. 짓는 쪽은 큰 투자를 안심하고 회수하고, 쓰는 쪽은 필요한 공급을 묶어 두는 거예요. 양쪽의 겁을 맞바꾼 계약인 셈이에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