매수 버튼을 누를 때 우리는 상대를 궁금해하지 않아요. 화면엔 가격과 수량만 뜨니까요. 그런데 그 반대편엔 분명 누군가 있어요. 내 주식을 넘겨줄 사람, 혹은 내 돈을 받을 사람이요.
여기서 조용한 질문 하나가 생겨요. "저 사람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쩌지?" 내가 돈을 냈는데 주식이 안 넘어오거나, 내가 주식을 넘겼는데 돈이 안 들어온다면요. 개인끼리라면 서로 얼굴을 보고 못 미더우면 안 하면 그만이에요. 하지만 하루에 얼굴 모르는 상대와 수없이 거래해야 하는 시장은, 이 질문에 답을 못 하면 애초에 돌아가지 못해요.
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뜻밖에 단순해요. 서로를 안 믿어도 무척 만드는 거예요.
방법은 이래요.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직접 마주 보지 않아요. 그 사이에 한 기관이 쑥 들어와서, 파는 사람에게는 '내가 살게'라고 말하고, 사는 사람에게는 '내가 팔게'라고 말해요. 그러면 나는 얼굴 모르는 상대가 아니라 오직 이 기관 하나만 상대하게 돼요. 이 기관이 청산소예요.
이제 내가 걱정할 상대는 딱 하나로 줄었어요. 저 멀리 있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약속을 지킬지가 아니라, 이 청산소가 약속을 지킬지만 보면 돼요. 시장의 수많은 얼굴 없는 거래가, 이 한 자리를 거치며 '믿을 수 있는 거래'로 바뀌어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