낯선 길을 오래 걸었다고 해 봐요. 한참을 왔는데 아직 도착을 안 했어요. 여기서 돌아가면 지금까지 걸은 게 다 헛수고 같아요. 그래서 '조금만 더 가면 나오겠지' 하며 계속 걸어요. 그런데 사실은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 수도 있어요.
이미 많이 왔다는 사실이, 계속 가야 할 이유처럼 느껴지는 거예요. 그런데 '얼마나 왔나'는 '이 길이 맞나'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. 잘못 든 길은 많이 걸었다고 맞는 길이 되지 않아요. 오늘 볼 건, 이미 넣은 게 많을수록 더 넣게 되는—그래서 발 뺄 자리를 자꾸 지나치게 되는 이 마음이에요.
투자에서 이 마음은 이렇게 나타나요. 어떤 판단에 이미 상당히 들어갔는데 일이 잘 안 풀려요. 그러면 발을 빼는 대신 '여기서 조금만 더 넣으면 만회할 수 있어'라며 판을 키워요. 넣은 게 많을수록 멈추기가 더 어려워지고, 멈추기 어려우니 또 넣게 되죠.
이걸 몰입 상승(escalation of commitment)이라고 불러요. 실패가 보이기 시작할수록 발을 빼기보다 오히려 더 깊이 밀어 넣는 마음이에요. 처음엔 작게 시작했는데, '조금만 더'가 몇 번 반복되면 어느새 감당하기 힘든 크기가 돼 있어요.
핵심은, 판을 키우는 이유가 '더 넣으면 나아질 근거'가 아니라 '지금까지 넣은 걸 헛무척 만들기 싫은 마음'이라는 거예요. 앞을 보고 넣는 게 아니라, 뒤를 지키려고 넣는 거죠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