반도체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보통 칩을 설계하는 회사, 칩을 찍어 내는 공장을 떠올려요. 그런데 그 공장은 맨손으로 칩을 만들지 않아요. 손톱만 한 칩 하나에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회로를 새기려면, 그걸 해내는 특수한 기계가 있어야 해요.
여기서 한 겹 더 들어가 볼게요. 그 기계는 누가 만들까요. 칩 만드는 회사가 직접? 아니에요. 그 기계를 전문으로 만드는 또 다른 회사들이 따로 있어요. 칩 산업의 진짜 밑바닥엔, 칩이 아니라 '칩 만드는 기계'를 만드는 세계가 깔려 있어요.
이 기계를 만드는 건 유난히 어려워요. 몇 가지가 겹쳐요.
원자 몇 개 수준의 정밀함을 다뤄야 하니 기술 장벽이 까마득해요. 그 기술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, 수십 년간 조금씩 쌓아 온 경험과 실패의 더미 위에 서 있어요. 게다가 기계 하나에 셀 수 없이 많은 부품이 정확히 맞물려야 하고, 그 부품을 대주는 협력사 그물망까지 함께 자라야 해요.
그래서 새로 뛰어들어 따라잡으려 해도, 앞선 회사가 쌓아 둔 세월과 그물망을 단숨에 복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. 이 어려움이 문을 좁게 만들어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