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야기를 순서대로 되짚어 볼게요. 처음 사람들은 케이블을 답답해했어요.
케이블은 수백 개 채널을 한 묶음으로 팔았어요. 정작 보는 건 몇 개인데, 안 보는 채널 값까지 다 내야 했죠. '보지도 않는 걸 왜 돈 내?'라는 불만이 쌓였어요.
그때 스트리밍이 나타나 다른 약속을 했어요. 보고 싶은 것만 골라, 원할 때, 광고 없이 보라고요. 묶음을 풀어 낱개로 파는 방식이었어요. 사람들은 케이블을 끊고 갈아탔어요.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앞 절반, '묶음을 푸는' 국면이에요. 이 국면에서 스트리밍은 케이블을 이긴 해방자처럼 보였어요.
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. 인기 있는 콘텐츠를 가진 회사들이 저마다 자기 서비스를 따로 차렸거든요. 이 드라마는 여기, 저 영화는 저기, 그 스포츠는 또 다른 곳.
보고 싶은 걸 다 보려면 여러 서비스를 각각 구독해야 했어요. 하나하나는 케이블보다 쌌지만, 서너 개를 합치니 어느새 예전 케이블 값과 비슷해졌어요. '골라 보려다 도로 다 사게 된' 셈이죠.
소비자도 지쳤어요. 이건 이 앱, 저건 저 앱, 뭘 어디서 봤는지 헷갈리고, 매달 여기저기 빠져나가는 돈을 관리하기도 번거로웠어요. 낱개로 쪼개진 자유의 대가가 이런 피로였던 거예요. 이 지점이 순환의 방향이 바뀌는 곳이에요.